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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기사 위성, UFO와 디스커버리호 잔해 그 사이




흑기사 위성, UFO와 디스커버러호 잔해 그 사이


그 넓은 우주에 정말 생명체는 지구인 밖에 없는것인가, 웃긴건 이런 지구에서는 신문이라는 대중들에게 정보를 공개하는 언론이 발행된 후 1942년 로스엔젤리스 UFO 대공습 사건을 비롯하여 더욱 정보가 세계화 된 70년이상이 흐른 지금까지도 외계인과 UFO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중 어느하나 '확신'을 주는 정보는 하나도없다. 어쩌면 심하게 끓었다가 흐지부지하게 식어버리는 양은냄비같은 떡밥이 UFO에대한 대중들의 확신이 아닌가.


1960년도에 또한 그시대 심하게 끓었던 떡밥이있었다. 그건 바로 '흑기사위성' 이라는 것인데

1957년 소련이 처음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1958년 미국은 익스플로러를 발사하지만 궤도진입에 실패한다.

그 해까지 미국은 수많은 익스플로러 13호까지의 실패를 거치고 1960년8월 14호를 궤도 진입에 성공한다.



아무튼 위성의 역사는 이러한데, 흑기사 위성의 정체는 1960년 3월 처음 타임지에 공개됬다. 




이 위성은 1960년 2월 한참 소련 미국 냉전 시기일때 프랑스, 미국, 소련에게 발견된 것이며 멈춰있는것이아니라

이동중이라는 것. 사진은 당시 미국 국방부가 가지고있는 사진을 인용한것이라, 당시 기밀이 유포 된건지 미국방부에서

뿌린건지는 알수가없었다. 


타임지가 특종을 때린 후, 이후 전세계에 있는 천문학자와, 수신전문가들은 이 위성에 대한 추적과 연구를 시작했으며

수많은 똥(SF소설가들의 찬란한 소설)을 낳으며 SF계의 희대의 떡밥이된다.(ex 수신호 분석으로 밝혀진 1만3천여년전의 별자리)



한창 흑기사위성에 대한 언론과 세계 과학자들의 관심이 뜨거워지자, D.하이젠버그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 사항을 이후 기밀로 부쳤고 흑기사위성에 대한 정보는 2주후에 언론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당시 타임지는 이 특종기사를 낸 2주만에 이 흑기사 위성은 미국에서 초기 발사실패한 앞선 디스커버러 위성의 잔해라고 발표했다.



그렇게 대중들은 그렇구나하며 20년을 잊고살았지만 1987년 NASA는 우주왕복선 인데버호에서 촬영한 5장의 사진을 공개하는데

웃긴게 그건 바로 타임지가 공개했던 흑기사 위성 모습과 흡사했다.




이후 1988년 12월 구소련 지상위성 관측소에서 흑기사위성은 다시 발견됬고, 기밀로 붙임으로서 공해상에서

서로의 위성으로 위심했던 소련과,미국은 제3의 위성이라는 것을 알고 외교접촉을 연 것.

이후 20년간 묻혀있던 흑기사위성에 대한 떡밥은 다시금 부활했고, 198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구소련우주항공전문가 '모쓰 메스화'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이 위성은 1989년 말에 지구궤도에 출현하였는데 이것은 지구에서 발사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세계에 모인 200여명의 천문학자들은 이 흑기사위성에 대한 연구추적에 대한 결의를 공식발표했다. 




200여명중에 한명인 프랑스 천문학자 죠지미라 박사는 흑기사 위성은 지구에서 온 것이 아닌 5만여년전의 물체라며,

 증거로 예상 무게 15톤과(당시 위성 무게의 최대치 500kg), 당시 과학으로는 상상만 가능한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동쪽으로 이동하는 체감속도를 예를 들었고, 소련과 미국 및 각국 공해에 잡힌 주기적인 출몰과 이동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사라지는것을 예를 들며 외계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흑기사 위성' 추적연구에 대한 정보는 더이상 대중들에게는 다시 발표되지않았고, 21세기가 된 지금은 그저 잊혀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아직까지 이 위성에 대한건 그저 당시 정부가 발표한 추락한 디스커버러호의 잔해인가, 


아니면 실제 아직까지 NASA와 우주 연관국의 고위급인사들에게만 보고되어지고있는 '실제'인가의 정답은

아마 그들만이 알거같다.